● 실업급여 하한액 낮추거나 폐지
최근 정부와 여당이 실업급여 하한액을 낮추거나 폐지하는 방안을 논의하면서 실업급여를 받는 실업자들을 폄하하는 발언으로 공분을 사고 있다.
지난 7월 12일 ‘실업급여 제도개선 당정 공청회’ 참석자들은 “장기간 근무한 남자 분들은 어두운 얼굴로 오는데 여자분들, 계약기간 만료, 젊은 청년들은 이 기회에 쉬겠다고 오고, 실업급여 받는 도중 해외여행 가고, 샤넬 선글라스 사고, 옷을 구매하고 즐기고 있다”며, 실업급여 수급자 및 청년·여성노동자들을 비하하는 발언을 남겼다.
이날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실업급여를 받는 것이 일해서 버는 돈보다 많아지면서 문제가 생긴다. 우리 젊은 세대들이 일하는 것보다는 조금 덜 벌고 그냥 편하게 쉬고 싶어 하는 그런 구조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실업급여가 악용돼 달콤한 보너스란 뜻으로 ‘시럽급여’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당정의 발언에 대해 특히 여성노동자들은 “일부 사례가 보편적 일탈이 아닌데도 대표적인 ‘노동약자’ 계층인 여성노동자들이 처해 있는 사회적 조건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복지수급자에 대한 의심과 낙인, 혐오를 조장하면서 복지 제도를 국민들 사이에 제로섬 게임으로 평가절하하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실업급여 악용 사례’를 내세우는 당정은 월 180여만 원 수준인 실업급여 하한액을 낮추거나 아예 폐지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현재 하한액은 184만 7040원, 상한액은 198만 원이다. 최저임금 노동자 세후 월 근로소득 179만 9800원보다 많아 재취업 의욕을 떨어뜨린다는 주장이다.
고용노동부는 고용보험제도개선TF를 통해 실업급여의 하한액을 현실적으로 조정하는 안을 검토하고 있다. 실업급여는 통상 평균임금의 60%로 산출된다. 하지만 평균임금의 60%로 산출한 금액이 최저임금의 80%로 계산되는 실업급여 하한선에 도달하지 못하면 ‘최저구직급여액’(실업급여 하한액)이 지급된다.
실업급여 하한액 적용자는 해마다 70% 이상을 차지한다. 지난해 실업급여 수급자 163만1000명 중 하한액을 적용받은 사람은 119만2000명(73.1%)이다. 하한액 적용자는 청년 세대의 비율이 85%로 매우 높다. 이어 △60세 이상(72%) △30~39세(71.2%) △50~59세(70.2%) △40~49세(68.5%) 등의 순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첫해인 2017년 10조2544억원의 적립금이 쌓였던 고용보험기금은 코로나19를 겪은 뒤 사실상 적자 상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8~2022년 쌓인 고용보험 재정수지 적자는 4조9,000억 원에 달한다. 고용보험 재정 악화는 코로나19에 따른 경제 한파를 겪은 세계 주요국이 겪는 문제라는 게 고용노동부 측 설명이다. 적립금이 고갈된 프랑스 등과 비교할 때 우리나라 사정은 양호한 편이라는 것이다.
▲ 실업급여 / 사진 = KBS 뉴스 영상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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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업급여 마저 ‘선별복지 기조’
‘실업급여’는 고용보험 가입사업장에서 근무하다가 경영상 해고, 계약기간만료 등 비자발적 사유로 이직(실직)한 근로자가 근로의 의사와 능력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재취업 활동을 하는 경우에 실업급여(구직급여와 취업촉진 수당)를 지급하는 제도이다.
대상자은 퇴직 전 18개월간 180일 이상 피보험자로 근무하다가 비자발적 사유로 이직(실직)하고, 근로의 의사와 능력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재취업활동을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다만, 1주 소정근로시간이 15시간 미만이고 소정근로일이 2일 이하인 근로자로서 90일 이상을 근로한 경우에는 퇴직 전 24개월간 180일 이상이어야 한다.
일용근로자의 경우에는 수급자격 인정신청일 이전 1개월간 일한 일수가 10일(유급휴일 포함) 미만일 것, 또는 수급자격 인정신청일 이전 14일간 연속하여 근로내역이 없을 것 등의 수급요건이 추가된다.
실업급여는 이직(퇴직) 당시 연령과 고용보험가입기간에 따라 120일~270일의 범위 내에서 이직 전 평균임금의 60%를 지급한다. 상한액은 1일 66,000원, 하한액은 최저임금액의 80%선이다.
여기에서 실업급여는 양도 또는 압류하거나 담보로 제공할 수 없다. 실업급여수급계좌에 입금된 금액 전액에 관한 채권은 압류할 수 없다. 또한 실업급여에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공과금이 부과되지 않는다.
정부가 고갈 위기에 놓인 고용보험기금 재정 건전화를 위해 현행 1.6%인 실업급여 계정 보험료율(고용보험료율)을 2022년 7월부터 1.8%로 인상되었다. 사용자와 근로자는 각각 절반씩 0.9%씩 부담하고 있다. 이에 근로자·사용자는 5조원 이상의 보험료를 추가 부담했다.
대통령은 최근 사회보장 전략회의에서 “사회보장 서비스를 시장화하고 경쟁 체제를 도입하겠다”라며 선별복지 기조를 재차 내비쳤다.
지금은 “여성과 청년이 안정되고 평등하게 일을 할 수 있도록, 양질의 일자리에 대한 선택지를 넓히게 해야 하는 때”인데, 오히려 기업과 개인이 낸 고용보험료를 통해 이뤄지는 실업급여 제도에까지 선별복지 기조의 확장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 노동자들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 부족한 점을 ‘더욱 강화해야’
“실업급여는 심리적 안정감이다” 실업급여를 요긴하게 생산적으로 잘 쓰고 있는 청년 노동자도 많다. 물론 악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보다는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고 재취업을 하는 등 좋은 사례에 주목해야 한다.
사회적 위기가 더 빈번히 찾아오고 그에 대응할 수 있는 조건 또한 한층 열악한 ‘노동약자’ 계층일수록, 실업급여 수급의 필요성은 매우 절실하다. 누군가 실업급여를 자주 수급한다는 것은, 결국 그가 ‘불안정한 노동을 반복’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는 말과 다를 바 없다.
실업급여는 고용보험 가입자가 보험료를 내고 정당하게 수급하는 것이다. “내가 월급에서 쪼개서 고용보험 냈던 것을 되돌려 받는 것이다. 그마저도 2주에 한 번씩 취업하는 노력을 증명해야 한다. 그런데 왜 공짜로 주는 듯이 말하는지 모르겠다”는 불만 토로가 상당하다.
또한 실업급여를 어떤 용도로 쓰는 것은 개인의 권리이자 자율에 관한 문제다. 용처에 대해 정부와 정치가 간섭하는 것은 대단히 무례한 탈인권적 행위이다.
전문가들은 오히려 현 실업급여가 부족한 점을 보강해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부정수급은 범죄이기에 이런 걸 근절하는 것에 더 매진하는 게 낫다. 또한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실업급여 지급 사유가 적법한데도 받지 못하는 것”이라며 “노동자를 내보내면서 회사가 자발적 사직으로 허위 신고하는 사례들이다”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실업급여를 단순하게 대폭 축소하거나 하한선을 폐지하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반복되는 실업급여 수급의 저변에는 계약직이 급증하고, 오래 다닐 수 있는 좋은 회사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꼼꼼히 따져볼 일이다. 특히 실업급여 하한액 조정은 ‘고용보험법 개정’ 선결 요건이어서 여소야대 국회 문턱을 넘기 힘들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