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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태 선임 기사입력  2019/12/27 [12:59]
[칼럼]‘메러디스 빅토리 호’와 크리스마스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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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니스트 안상현  ©

[대한뉴스통신/칼럼니스트 안상현 ] 2014년 12월 개봉되어 140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던 영화 ‘국제시장’을 다들 기억할 것이다. 영화 도입부에 그 유명한 흥남철수 장면이 생생하게 나온다. 1950년 12월 23일, 남하하는 중공군을 피해 피난길에 오른 10만 4천 명은 다들 흥남부두로 모여들었다. 이들 피난민을 정박 중인 193척의 군함들이 나누어 태워 9만여 명은 남으로 내려 갈 수 있었지만 남은 1만 4천 명은 더 이상 탈 배가 없어 발만 동동 구르며 죽음을 기다려야만 했다. 흥남부두에 남아 있는 배는 이제 단 한 척. 그것도 군함이 아니라 항공유와 군수품을 적재하고 온 일반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 호’였다. 탑승 정원은 불과 60명. 승조원들은 선장인 레오나드 라루에게 지체할 시간이 없으니 속히 떠나자고 제의한다. 그러나 선장 레오나드 라루는 피난민의 절규와 눈물 어린 호소가 눈에 밟혀 쉬이 출항 명령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갑자기 그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하기 시작한다. “하느님! 선하디 선한 저들을 사지(死地)에 놔두고 떠날 수는 없습니다. 부디 바라옵건대 하느님께서 기적을 내려주시길 간청 드리옵니다.”


 간절한 기도가 통했는지 철수 지휘관인 알몬드 군단장은 일부 피난민을 ‘메러디스 빅토리 호’에 태워도 좋다는 허가를 내린다. 이 때 다시 기적이 일어난다. 일부 피난민이 아닌 1만 4천 명 전부를 태울 수 있도록 25만 톤에 달하는 군수물자와 식량 및 물을 모두 버리라고 선장 레오나드 라루가 명령한 것이다.


 그리하여 정원 60명의 230배에 달하는 1만 4천 명이 모두 무사히 ‘메러디스 빅토리 호’에 탑승할 수 있었고 3일간의 항해를 거쳐 1950년 12월 25일 거제항에 입항하게 된다. 처음 탑승 인원은 1만 4천 명이었지만 3일간의 항해 동안 5명의 아이가 태어나 거제항에서 내린 이는 모두 14005명이었다. 혹한과 굶주림에 시달리고 극한의 공포까지 견뎌내야 했지만 단 한 명의 낙오자도 단 한 명의 사망자도 없었다. 역사가들은 인류 문명사에서 손에 꼽을 정도의 기적적인 사건이라고 표현한다. 실제로 ‘메러디스 빅토리 호’의 14000명 구출 작전은 한 척의 배로 가장 많은 생명을 구한 세계 기록으로 2004년 영국 기네스북 본부에 등재되었다.


 레오나드 라루 선장은 한국전쟁이 끝나자마자 그의 임무는 끝났다고 여기고 미국 뉴저지 주의 ‘성 베네딕토 수도원’에 들어가 마리너스라는 이름의 수사로 47년 동안 봉헌하며 살았다. 레오나드 라루 선장(마리너스 수사)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해상구조를 자발적으로 수행한 장본인인데도 수도원에 들어간 뒤 세상에서 철저히 사라져 버렸고 그가 행한 영웅적 행위를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수소문 끝에 1958년, 한국 정부가 레오나드 라루 선장과 그의 부하들에게 한국 최고의 훈장을 수여 하려고 초대했을 때도 그는 수도원을 나오지 않았다. 하느님의 사람으로서 당연히 할 일을 했다고 여기고 세속적으로 유명해지거나 상을 받는 것을 전혀 달가워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가 수도원에 들어간 후 세상에 두 번 나왔는데, 한번은 1960년 미국 정부가 그의 인도주의적 공로를 인정해 훈장을 주었을 때다. 이때도 수도원장 신부의 권유에 순종하기 위해서였다. 두 번째는 선종 직전인 2001년, 병원에 가기 위해서였다. 미국 정부의 훈장을 받은 자리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연설했다.


“바다에 나가는 사람이 배우는 첫 번째 교훈 중 하나는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빌려주는 것입니다. 배의 안전과 배가 나르는 모든 것의 안전은 바로 이 교훈에 따른 것입니다. 이 교훈은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여라.'는 주님의 계명으로 바꿔 말할 수 있습니다. 흥남에서 제가 했던 일은 이 계명을 실천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저는 한 인간으로서 하느님 앞에 아직도 너무 부족하고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사람이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답게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꼭 거창한 사명이 아니더라도 숭고한 인류애와 하느님이 주신 선한 본성을 잃지 않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한다면 권력과 명예와 돈을 갖고 있지 못하고 있고 세속적으로도 남들에 비해 뒤처지고 있는 삶을 살고 있다 하더라도 하느님께서 보실 때는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의 책임과 의무를 다해가고 있다고 어여삐 여겨주시지 않을까?


 기적은 결코 멀리서 다가오는 것이 아니다. 하루하루 어려운 고비와 힘든 시련을 버텨내는 것도 기적이요, 오늘을 살아내어 내일의 희망을 꿈꿔보는 것도 기적이다. 여러모로 어렵고 힘든 한해였던 2019년 기해년을 잘 살아 온 모든 국민들에게 아낌없는 찬사와 격려를 보내는 바이다.


 실로 안타까운 사실이 하나 있다. ‘메러디스 빅토리 호’가 1993년 중국에 팔려 고철로 분해되어 버린 것이다. 악조건 하에서도 14000명의 소중한 목숨을 구해 전 세계에 감동을 안겨 준 ‘메러디스 빅토리 호’를 왜 우리는 구매하여 영구보존할 생각과 노력을 하지 못했던 것일까? 아니 영구보존할 생각과 노력을 왜 하지 않았던 것일까?


 ‘메러디스 빅토리 호’를 구입하여 거제항에 영구 보존 전시한다면 길이길이 평화 교육과 안보 교육의 장으로 활용할 수 있었을 텐데 실로 안타깝다. 중국에 고철로 팔려나가기 전에 정치인과 기업가들이 합심하여 이를 막고 ‘메러디스 빅토리 호’가 한국에
남아있을 수 있게 했어야 했다.


 기회가 된다면 69년 전, 크리스마스의 기적을 이뤄낸 레오나드 라루 선장(마리너스 수사)의 평전을 쓰는 작업을 하고 싶다. 조용히 그의 묘소를 찾아 꽃 한 송이 바치고 싶다. 물론 소탈하고 겸손한 그는 천국에서도 이를 달갑게 여기지 않겠지만 미리 양해를 구한다면 그리고 세계평화의 증진을 위하여 행한 일이라고 설명해드린다면 기꺼이 이해해주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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